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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구, 니혼바시 산책
나는 니혼바시에서 살았었다. 주소상으로 도쿄의 중앙구에 속하고 경제와 언론의 중심지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의 영광(?)은 도쿄역의 마루노우치쪽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아직도 많은 금융관련 회사들, 언론사,
백화점이나 은행들이 몰려있다. 덕택에 시급이 비싸고, 땅값도 비싸고, 그러니 야칭이나 물가도 비싼 동네다. 게다가 내가 살았
던 게스트하우스 근처의 맨션들은 그냥 봐도 가격이 얼마정도 있겠구나 싶은 그런 곳들이었다. 그 사이의 이런 허름한 건물!!
게스트하우스 코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좋았던 이유는 많다. 시설이 낙후되어 보이지만 내부는 멀쩡하고 일단 한국인이 운영하니 언어상
불편함이 없었다. 개인차가 있는 것이니 자세히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혹은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늘 한적하고 북적이는 걸 본
일이 별로 없는 길. 바로 앞에 중앙구청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이 있어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던 곳이랄까. 막상 그 건물로는
한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다.
밝은 앞쪽과 다르게 뒷편의 길은 높은 건물 탓인지 그늘이 져 있었다. 멀리로 신사도 하나 보이고. 이 길은 이상하게도 공적인
공사가 많아서 공사 보안 아저씨들이 밤에도 길을 지켰었다. 덕택에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무섭지가 않았다.
뭐 바로 앞으로 조금만 나가면 큰 도로라서 딱히 무서울 일이 없긴 해도, 일단 골목(?) 개념이다보니....
낮이면 늘 들려오던 염불외는 것 같은 소리와 종소리, 목탁소리 등등. 정체를 알 수 도 없고 별로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곳
이라 항상 지나갈때만 궁금하던 곳이었다. 이 신사를 지나 꺾으면 드럭스토어나 맥도널드, 라멘집 등등이 있다. 이 길을 따라
10여분 이상 직진하면 컴포트 호텔도 있다. 그리고 도매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과 연결된다. 보따리 장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
이 그곳을 많이 찾기에 다양한 외국인들도 볼 수 있었다.
신사를 끼고 있는 골목길에서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큰 거리다. 소바집과 병원, 스타벅스 그리고 지하철로
연결된다.
내가 살았던 곳의 장점이라 함은 교통의 편리함에 있다. 스타벅스 옆으로 보이는 곳이 히비야센 코덴마초역이다. 히비야센 뿐
아니라 긴자센, 한조몬센, 야마노테센, 토에이신주쿠센, 소부혼센, 케이힌토호쿠센, 츄오센 등이 다녔다.
역으로만 치면 1분~15분 거리에 8개나 있었다. 그러니 조금만 걸어가면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갈 수 있는 노선들이 줄줄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제일 가깝고 편했던 것이 히비야센이라 록본기나 긴자, 시부야 등에 자주 다닐 수 있었다.
할일이 없던 휴일에 미친척 하고 도보로 걸어간 거리들이 좀 있는데, 집에서 아사쿠사까지 걸어서 45분, 우에노까지 1시간,
긴자까지 50분 정도가 걸렸다. 자전거가 있었다면 아마 훨씬 더 자주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집에서 대략 7분 정도 걸리는 미츠코시 백화점. 백화점 자체는 굉장히 고가의 물건들을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하에서 푸딩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면 별로 가지 않았지만, 바로 근거리가 내 알바처였고 또 요 앞에서 도쿄역까지 무료로
운행하는 메트로 버스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갔었다. 그러고보니 메트로버스를 고려하면 내가 다닐 수 있는 역은 훨씬 더
많았던 셈이다.
미츠코시를 끼고 옆으로 돌면 일본은행과 화폐박물관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비지니스 중심가였던 만큼 크고 높은 빌딩
들이 즐비하다. 참고로 화폐박물관은 입장료가 없기 때문에, 가끔 그냥 심심하면 도쿄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들르곤 했었다.
여름엔 일단 시원하고 볼 일이니까.
팬질도 그렇지만 뭣보다 나라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나라 마호로바관이 미츠코시 건너편에 있었다. 오사카쪽에도
니혼바시라는 지명이 있는 것, 그리고 여기가 무로마치라는 지역인데 그 지명도 있으니 뭔가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역사에 대해서는 전무한 지식이다보니 그런 관계성이 문득 궁금해지기는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이 길은 마호로바
관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가 즐겨 생필품을 쇼핑하던 마트와 가까웠기 때문에 자주 걸어갔었다. 여기 바로 옆의 편의점이
내 일터기도 했다.
지하철로는 미츠코시마에역, 나라 마호로바관이나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쭉 걸어 내려오면 나오는 니혼바시. 지명이 아닌
일본다리-라는 의미로 직역하면 된다. 역사가 있는 곳이라곤 해도 나에게는 그냥 사진 찍으면 이쁘게 나오는 곳에 불과했
었다. 이 길을 통해 직진에 직진을 거듭하면 도쿄역으로도 갈 수 있고 긴자로도 이어진다.
사는 그 순간에는 잘 몰랐던 사실들이 이후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사진들은 모두 귀국하기 1달 전쯤에 찍은
사진들이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내 동네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미리 했다면 좀 더 많은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르고, 더 좋은 생활을 누리게 해줬을지도 모르는데. 아쉬워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귀차니즘이라는 걸 내 인생에서
좀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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