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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창고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by Hare 201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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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2005) 



집에서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다 만난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사실 눈길을 끈 것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얼굴을 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내뱉는 로봇, 마빈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빈이 주인공이냐면, 그건 아니다.





주인공은 이 남자, 아서다. 목욕가운 차림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남자. 웃기다, 이 영화가 사실 웃기다. 그는 평범한 영국인 남자로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 모닝 밀크티를 즐긴다. 그러던 중 집 앞에 불도저가 와서는 '당신 집 철거할거니까 나가라'고 한다. 당연히 어이가 없으나 몇번이고 예전부터 통지를 했다는 공사담당자의 말. 그리고 갑자가 등장한 우주선은 아주 매너있고 예의바르게 지구 철거에 대해 알려준다. 은하계 철도를 세우기 위해 방해가 되는 지구를 철거할 것이며 그들은 이미 50년 전부터 통보를 해왔다는 거다. 





보통 지구 멸망을 다루는 영화들은 자연재난이나, 외계인의 침공으로 설정 화려하고 엄청난 CG를 넣어 그 순간을 장렬하게 만들곤 했다. 멸망까지의 그 시간동안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감정을 보여주고 인간은 역시 위대해-라는 장면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대한 우주선을 보고 사람들이 꽥꽥거리는 사이로 5, 4, 3, 2, 1 하고 펑 소리도 없이 샥- 지구가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모래처럼 흩어지는 거다. 정말 심플했다. 아, 진짜 멸망하려면 저렇게 멸망할 수 도 있구나-라며 납득해 버린다.

그 지구멸망의 바로 직전, 주인공인 아서는 지금까지 지구인이라 믿으며 사귀었던 친구 포드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아서를 꼭 안은 채 히치하이킹을 해서 우주선에 올라탄다. 엄지손가락 하나만 펴자, 그럼 우주선에 탈 수 있다!





왼쪽부터 외계인 절친 포드, 은하계 의장 자포드, 그리고 아서와 함께 살아남은 유이(有二)한 지구인 트레이샤.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다. 저 은하계 의장은 노홍철을 좀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게다가 이 영화에서 그는 하는 행동 말투 생각까지 노홍철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혹시 노홍철이 이 영화를 밴치마킹...이라기엔 시기가 안 맞으니 원작이라는 그 책을 벤치마킹했을까? ^-^

무려 저 생각없는 의장은 지구가 폭파되는데 동의하는 최종 서명자다. 자신은 그게 지구를 폭파하는 건지도 모른 채 사인을 요청하는 줄 알고 사인을 해준 것이라는게 또 우습다.





그리고 이들 멤버에 끼어있는 유일한 로봇, 마빈. 내가 처음 이 영화에 주목하게 만든 녀석인데 무려 우울증에 걸린 로봇이란다. 때문에 만사가 귀찮고 부정적이다. 목소리가 익숙해 검색을 좀 해봤더니 역시나 해리포터에서 스네이프 교수로 나온 알란 릭맨이 목소리를 맡고 있다. 우주선에 몰래 침입자가 있다며 아서 일행을 잡아오라고 명을 받았는데도 불구, 아, 제발 알아서들 하게...라며 한숨을 쉬던 목소리가 잊혀지질 않는다!





혹시 지구에서 가장 영리한 존재가 뭘까-라고 물으면 인간이라고 대답하실텐가? 이 영화에서 대답은 No. 그 존재는 바로 이 두마리 생쥐다. 그들은 인간들이 자신이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믿게끔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위에서 폭파된 지구는 바로 이 친구들이 만들어 낸 거나 다름이 없다. 자세한 것은 영화를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난 그냥 내가 좋았던 것들 위주로 포스팅 하는 것 뿐이니.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고 몇번이고 돌려보았던 장면, 우주는 위대하다! 
만약 우주의 그 반짝이는 많은 별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과도 같다면 어떨까? 영화는 그것을 사실로 설정하고 있다. 아서가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행성을 찍어내는 공장이 존재하다니! 진짜라면 나도 가보고 싶을 정도다. 무려 안내를 맡은 저 흰머리의 남자는 자신이 노르웨이를 디자인했다며 자랑한다. 그 말투가 디자인 공모에서 대상이라도 탄 사람의 말투와 같았다.





호주에 있는 거대한 바위, 에어즈락 혹은 울룰루다. 보면 알겠지만 오렌지색 옷을 입은 인부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에어즈락의 붉은 빛이 페인트라- 지구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태초부터 변화하고 침식작용과 바람이 어쩌고 저쩌고하지만, 이 영화의 관점에서 지구의 모든 것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다는 무슨 소방관마냥 물을 부어서 채우고, 에베레스트는 입력된 내용대로 솟아오르며 버섯은 버튼 하나면 뿅-하고 올라온다. 무려 이 오렌지색 인부들, 아서의 집도 고대로 새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구의 부활을 주문한 존재가 위에 언급한 생쥐들이란 말이다. 그들 덕택에 백업이 되어있는 지구, 그리고 재생된다. (아주 잠깐 생각한건데, 컴퓨터도 백업을 하고 난 후 작업한 것들은 살아있지 못한데, 그 백업이 되지 않았던 순간에 태어난 생명들은 어쩌나-?)





이 영화를 보면서 특별히 심각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자연의 위대함? 우리가 지켜야만 할 것들? 환경? 그런 골치아픈 생각은 필요 없다. 그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각인이 되어버릴테니까. 노래 부르는 돌고래들의 노래를 들으며 또 한번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자가 뭘 말하고 싶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받아들인 것은 그렇다. 영화는 아무런 설득도 하지 않지만, 난 스스로 설득되어 버렸다. 말도 안되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 가득찬 영화에서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들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그냥 어이없고 추천한 나를 원망하는 분들도 생길지 모르겠으나, 그 안에서 나처럼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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